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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췌장암…4대 암과 싸워 다 이긴 불사조

재일동포 사업가 김용해 회장…간·췌장·혈액암까지 극복기

일본 후쿠오카에서 호텔, 파칭코업 등 레저산업을 크게 일군 재일동포 기업가 김용해(75) 회장은 40세에 대장암, 수술 10개월 후에 재발한 대장암, 69세에 췌장암 말기, 전이성 간암, 혈액암을 차례로 겪었다. 

4개 암 모두 난치성 상태였지만, 그는 그때마다 암에서 완치되어 불사조처럼 살아났다.

김 회장은 고령의 나이에도 췌장 일대를 다 걷어내는 13시간 수술을 견디었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고난도 항암 치료를 이어갔다.  김 회장은 최근 마지막으로 앓은 혈액암 악성 림프종에서 암세포가 모두 사라졌다는 판정으로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2000억원 규모의 새로운 레저 사업을 진두지휘 하고 있다

이러한 기적 같은 이야기를 최근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어떻게 한 사람이 4번 난치성 암을 앓았는지, 어떻게 그때마다 완치되었는 김용해유코(Yuko)그룹 회장의 4전4승 암극복기를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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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은 1950년 일본 후쿠오카 남쪽 지방 도시에서 재일교포 1세대 사업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선인학교를 다니며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덕에 지금도 한국말을 잊지 않았다. 도쿄로 유학을 가서 와세다대학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그리고는 아버지 밑에서 사업을 배워 나갔다.

한창 사업 키우는 일에 재미를 붙이던 마흔 살 되던 1990년, 그에게 첫 암이 찾아왔다. 

의사가 바로 대장암 진단을 내렸다. 대장암이 손으로 만져질 정도로 컸다. 도쿄 준텐도대학병원서 CT검사를 받았더니 대장암이 배안에서 번진 상태였다. 대장암 종양지표 CEA수치가 정상보다 수 백배 치솟아 있었다.

“여러 외과 의사를 찾아갔는데, 다들 수술이 힘들다고 손사래를 쳤어요. 그런데 한 젊은 외과 교수가 한 번 해보겠다는 거예요.두 말 않고 그 의사에게 몸을 맡겼지요”

그는  수술을 어떻게 할 지, 경과는 어떨 지, 생존 가능성은 얼마인 지를 의사에게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김 회장은 4번의 결정적인 암 치료 과정에서 의사에게 모든 걸 일임했다. 

의사에게 치료 의사를 물어 찾았고, 암 치료에 임하는 결의가 보이면, 전적으로 의사를 믿고 따랐다고 했다.

요즘에는 대장암 수술을 복강경으로 하지만, 당시는 배를 열었다. 복부 한 가운데 위에서 아래로 40㎝ 가량 수술 자국을 남긴 대장암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대장의 절반과 거기에 딸린 혈관, 림프절을 모두 떼낸 수술이었다. 이후 수 차례 항암치료가 이어졌다. 80㎏이던 체중은 60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대장암은 사라진 듯 했으나, 10개월 후 대장암 종양지표 CEA 수치가 다시 올라갔다. 몸 어딘가에 대장암이 재발됐다는 의미다. 방광 위쪽에 대장암 잔당이 있는 게 확인되어 그는 다시 수술대에 누워야 했다.

낙관과 낙천은 그가 고난한 암 투병을 이겨내는 근본이 됐다. 그는 구토에 시달리고 식욕이 떨어져 먹기도 힘든 항암 치료 중에도 식사를 잘 했다. 병원 입원 중에도 매번 식사를 집에서 해오거나, 그가 다니던 식당에서 가져와 먹었다. 

병원은 처음에 이를 못 하게 했으나, 그가 식사를 워낙 잘 하고, 그 힘으로 회복이 빠르다고 보고, 식사 반입을 허용했다. 

그가 사업에 전념하면서 유코 그룹도 점점 번성했다. 유코그룹은 그의 선친 김종달 회장이 1948년에 세웠다. 고 김 회장은 경북 청도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열일곱살의 나이에 가난을 벗기 위해 일본 광원 모집에 자원했다. 

온갖 고생 끝에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호텔, 파칭코장. 대형 목욕탕 등 24개 사업장을 운영하며, 연간 매출 2000억원대까지 키웠다. 고 김 회장은 귀화 회유를 뿌리치고, 고향을 위해 장학금과 지원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 뇌졸중으로 78세 일기로 세상을 떴다.

김 회장은 아버지를 이어받아 유코그룹을 연매출 2200억엔(한화 2조원대)회사로 열배 키웠다. 레저기기, 리사이클 분야로 진출하여 시장 점유율 85%를 차지했다. 

사업이 순항하던 2019년 이번에는 췌장암이 찾아왔다. 69세 때다. 암 은 췌장 머리 부위에 자리를 잡았고, 암세포는 간으로도 날라가 덩어리를 형성했다. 전이성 간암이다. 췌장암 말기라고 볼 수 있다.

췌장암과 간암을 모두 제거하는 수술 시도가 무모한 도전일 수 있고, 수술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김 회장은 이번에는 고향 구르메시에 있는 성 마리아병원에 몸을 맡겼다. 비록 대학병원은 아니지만, 평소 다니던 친근한 병원이었고, 그 병원 외과 의사가 수술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이른바 ‘휘플 수술’을 받았다. 휘플 수술은 췌장 머리, 십이지장, 담관 등 췌장이 접한 장기 일대를 모두 걷어내는 수술이다.

수술은 13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환자도 의사도 대단한 인내가 필요했다. 

“50년 수술한 외과의사가 나 같은 암환자는 처음 본다고 했어요. 그 큰 수술이나 암치료를 앞두고도 늘 태연하고, 뭘 물어보지도 않으니 말이죠.” 

낙천은 고령의 나이에도 힘든 수술을 버티는 힘이 되어주었다.

휘플 수술 후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재발률 50%가 넘는 췌장암이 재발 없이 사라졌다. 간암도 사라졌고, 췌장 밖 다른 부위로 추가 전이도 없었다. 다만 췌장이 거의 없기에 당뇨병 환자가 됐고, 매일 인슐린 주사를 스스로 놓고 있다.

수술 후유증으로 담관 협착이 왔다. 

” 고비마다 의사를 잘 만난 것은은 그의 운이자, 의사를 잘 찾은 노력이었다.

김 회장은 2007년 ‘경상대 김종달(선친) 김용해 연구장학기금’을 설립해 12년 동안 14억 5000만여원을 출연했다. 

췌장암 완치 판정을 받을 때즘. 그에게 난데없이 혈액암이 찾아왔다. 74세였다. 진단은 악성 림프종이었다. 이 암은 림프계의 면역세포 B 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면서 발생하며, 빠르게 진행하는 특징을 보인다.

김 회장은 서울과 후쿠오카를 오가며 3가지 이상의 항암제가 섞인 항암치료를 6차례 받았다. 이번에도 모든 암치료 과정을 교수팀에게 일임했다. 

올해 6월 마침내 몸에서 림프종 암세포가 모두 사라진 완전 관해 판정을 받았다. 

암 투병 소회를 묻자, 김 회장은 “죽음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나름 열심히 지내면 나에게 살아갈 시간이 주어질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암을 극복한 김용해 회장. 사진: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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