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퍼 사이클에 힘입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기현상이 장기화하고 있다. 어제 환율은 전날보다 9.4원 오른 1539.1원으로 마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이후 17년여 만의 최고치다. 환율은 지난달 15일 1500원 선을 넘은 뒤 14거래일 연속 15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최장 기간이다.
올해 1~4월 경상수지 흑자는 1026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240억달러)의 4.3배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다. 이렇게 달러를 많이 버는데도 환율이 고공 행진하는 것은 중동 전쟁 불안으로 글로벌 달러 강세 현상이 나타나는 데다 올 들어 외국인이 주식시장에서 110조원 넘게 순매도한 영향이 크다고 한다. 경상수지 흑자로 번 달러의 70%가 외국인 순매도로 빠져나간 셈이다.
여기에 기업들이 수출 대금을 국내로 들여와 원화로 바꾸지 않고 해외에 재투자하려고 쌓아두는 것도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 관세 압박으로 기업들이 해외 현지 투자를 늘린 영향도 있지만, 노란봉투법 등 반기업·친노조 정책이 국내 투자를 가로막은 측면도 있다.
환율은 경제 펀더멘털(기초 체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원화 가치 하락은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경고로 봐야 한다.
고환율은 방심해선 안 된다는 신호다. 고환율은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고물가와 고금리라는 악순환을 낳고, 경제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특히 저소득층과 자영업자, 영세 중소기업 등 취약 계층이 물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는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1% 올라 26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