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외동포재단 기획이사·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 객원연구원
재외동포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으레 ‘700만 재외동포’라는 말부터 등장한다. 세계 곳곳에 수많은 동포가 살고 있다는 것은 분명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재외동포들과 함께 일하면서 나는 숫자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바로 동포 한 사람 한 사람이 낯선 땅에서 살아오며 쌓은 경험과 역량이다.
그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 자신의 분야에서 쌓은 전문성도 있고, 현지사회를 살아오며 체득한 지식과 감각도 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회에서 부딪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얻은 경험도 있다. 이런 것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재외동포가 가진, 잘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재외동포재단에서 한상사업을 담당할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장면들이 있었다.
해외에서 사업하는 동포 가운데 한국에 오면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 등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흔해서 별다르게 눈길을 끌지 못하는 상품도 이들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이런 물건은 우리 지역에는 없는데.”
“이 제품은 우리 시장에서도 가능성이 있겠는데.”
그들은 오랫동안 현지에서 생활하고 사업하면서 무엇이 있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고 있었다. 한국의 생산자가 쉽게 갖기 어려운 현지시장의 감각과 정보를 생활과 사업을 통해 축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식품 분야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지시장을 잘 아는 한상들은 어떤 제품이 잘 팔리는지, 현지 소비자들이 어떤 형태의 용기와 포장을 선호하는지 등 시장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 제품을 현지에서 판매하려면 포장이나 레이블 등을 현지시장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국내에는 좋은 제품과 생산역량을 갖추고 해외시장 진출을 원하는 중소기업들이 있었다. 한쪽은 현지시장에 대한 정보와 유통 경험을, 다른 한쪽은 제품과 생산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의 필요와 강점이 맞닿는 지점에 협력의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한상사업을 하면서 ‘연결’의 의미를 그렇게 배웠다. 사람을 많이 연결한다고 협력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같은 분야의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서로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 각자의 강점이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함께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을 때 만남은 실제 협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진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그러나 구슬이 많다고 저절로 보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구슬을 어떻게 꿰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연결은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나서는 그 가치를 충분히 살리기 어렵다. 어렵게 만들어진 연결이 실제 협력으로 이어지는지 살펴보고, 진행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을 함께 풀어가는 후속 노력도 필요하다. 그래야 일회성 만남이 지속적인 협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기업인들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는 학계와 과학기술, 법률·의료, 문화예술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과 경험을 쌓아온 동포들이 있다. 각자의 분야에서 오랜 세월 축적한 지식과 경험은 그 자체로 소중한 자산이다.
또한 많은 동포와 한인단체들이 한국문화를 알리고, 차세대에게 한국을 이어주며, 어려움에 처한 동포를 돕고 현지사회를 위해 봉사해 왔다. 상당수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내놓으며 해온 일들이다. 이러한 활동 역시 우리 동포사회가 오랜 세월 쌓아온 소중한 자산이다.
나는 오랫동안 재외동포 관련 일을 하면서 수많은 동포들을 만났다. 크게 성공한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며 한국과 거주국 사이에서 역할을 해온 평범한 동포들이 훨씬 많았다.
그분들이 타국에서 부딪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며 쌓아온 경험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사업을 하며 얻은 시장의 감각도, 전문 분야에서 쌓은 지식도, 지역사회에서 살아오며 체득한 경험도, 한인사회를 위해 오랫동안 봉사해 온 시간도 모두 소중한 자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