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개의 가게…실패한 장사에서 인생을 배웠습니다”

by 벼룩시장 posted Apr 29, 2023

네번째 에세이집 펴낸 편의점 점주 봉달호씨, 6개 매체에 칼럼과 에세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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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서 심각한 직업적 위기감을 느꼈다.”

편의점 점주 봉달호(49·본명 곽대중)의 신간에 소설가 장강명이 이런 추천사를 썼다. 소위 ‘글밥’ 먹고 사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현직 자영업자인 그의 글에는 삶의 현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과 눈물, 재미와 감동이 있다. ‘아무튼, 주말’에 기고하는 ‘봉달호의 오늘도, 편의점’을 포함해 현재 6개 매체에 칼럼과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그가 네 번째 에세이집 ‘셔터를 올리며(다산북스)’를 출간했다. 부제는 ‘나를 키운 작은 가게들에게’. 부모님의 구멍가게에서 출발해 농약 가게, 분식점, 갈비집, 오리탕집 등을 거쳐 지금의 편의점까지 가족이 운영해온 가게 9곳의 기억을 써내려 갔다. 작가들은 “한 집안의 장사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고 감명 깊을 수 있다니”(장강명), “세기말의 한국을 지나온 사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탁 칠 만한 이야기가 즐비하다”(강원국)고 추천사를 썼다. 

 

나를 키운 건 가족이 운영한 가게였다

신문에 실린 제 에세이를 보고 출판사 팀장이 ‘회고록을 써보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제 나이에 무슨 회고록인가 싶어 처음엔 거절했는데, 어차피 에세이는 자기 서사가 중심이니 내 인생을 통해 무언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를 키운 것, 인생의 주요 편집점은 부모님과 내가 운영했던 가게였다.

편의점 카운터에서, 냉장고 안에서, 창고와 시식대에서 손님을 맞고 제품을 진열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했다. 라면 박스 귀퉁이, 휴대폰 메모장, 영수증 뒷면에 바쁘게 휘갈겼다. 인터넷 편의점 점주 카페에 하나씩 올렸던 글들을 묶어 출판사 세 곳에 보냈는데, 세 곳 모두에서 연락이 왔다. 가장 먼저 연락을 준 시공사에서 첫 책 ‘매일 갑니다, 편의점’이 나왔다.

 

운동권에 실망해 사상적 이별

전남 나주가 고향이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운영하던 가게는 상호도, 간판도 없는 가게였다. 고교 1학년이던 1989년 전교조의 영향으로 운동권이 됐고, 고2 때 NL 계열 지하조직에 가입했다. 나중에 전향해 1999년 반한총련 계열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졸업 후 별 준비 없이 학교 앞에 ‘소주 장학생’이란 술집을 열었다가 4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영업 종료’ 안내문을 붙일 때의 심정을 그는 “인생의 낙오자가 된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그 뒤로 상경해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편집장, 데일리NK 논설실장을 역임하며 7년간 북한인권운동을 했다.

왜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NGO에 들어간 이유는 그동안 북한 정권을 추종했던 날들에 대한 내 나름의 속죄 시간을 갖겠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학교 캠퍼스에서 청년이 죽은 채 발견됐다. 대학 총학생회 간부들이 청년을 경찰 프락치로 오인해 학생회실로 끌고가 고문한 사건이었다. 사람이 죽자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 사고사로 위장했다. 조작극을 주도한 인물 가운데 몇 명은 내가 알던 이름이었다. 그 무렵 북한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 죽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사상적 이별을 결심하게 됐다.

 

장사는 실패까지 처절하게 복기해야

책엔 장사의 성공담과 실패담이 모두 녹아 있다. 그가 중국 선양에 건너가 식당을 열었다가 벌어진 일은 ‘이렇게 하면 망한다’는 몰락의 교과서다. 그는 “또 준비 없이 덤볐다가 대차게 실패했다”며 “서점에 가보면 성공 신화를 자랑하는 책은 넘치는데 실패의 경험을 절절히 기록한 책은 적다. 사람들은 실패했던 이야기를 감추려고 하고, 바깥 탓만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고 했다.

망한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준비 부족이다. 가게를 꾸준히 끌고 나가지 못한다는 자체가 준비가 부족해서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한 달에 완독은 5~6권, 발췌해서 읽는 건 50~60권 정도 된다. 국내에서 출간된 직업 에세이는 다 사서 읽고 있다. 다른 직업의 세계를 엿보는 재미도 있고, 이 사람이 직업의 어떤 측면을 어떤 방식으로 끄집어내는지 습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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