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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입양돼…한국 가족들, 아동권리보장원·성남중원경찰서에 감사
상봉하는 LA에서 사는 입양인(왼쪽)과 한국의 가족들. [아동권리보장원 입양인지원센터 제공]
"코로나19가 끝나면 꼭 만나뵈러 가겠습니다.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경기도 성남시에 살던 이모(당시 6세·여)씨는 지난 1985년 6월 친구들과 다른 동네로 놀러갔다가 친구들과 떨어져 길을 잃었다.
이씨는 할머니, 부모님, 오빠 2명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친구들과 길을 떠나기 직전 가족들과의 식사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이후 이씨는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졌고, 끝내 가족을 찾지 못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미국에서의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이씨의 양부모들은 얼마가지 않아 이씨를 파양했고, 혼자 남겨진 이씨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미국 생활을 이어갔다.그러던 중 이씨는 가족을 찾기로 결심하고 지난해 10월 미국 LA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 LA 총영사관으로부터 가족찾기를 의뢰받은 아동권리보장원은 실종 당시 관할서인 경기 성남 중원경찰서와 가족 찾기에 나
섰다.우선 경찰은 오빠가 2명 있었다는 이씨의 기억을 토대로 가족으로 추정되는 1천396명 중 가족 관계, 주소지 변동 등 이력이
비슷한 이들을 추려냈다. 이 중 김모(67)씨가 이씨가 말한 조건과 가장 들어맞았다.
경찰은 그의 DNA를 재취해 이씨의 DNA와 대조했고, 이 둘은 친가족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족의 가족상봉은 연합뉴스가 보도하면서 한국과 해외 한인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만에 친엄마 김씨와 오빠를 만났다.
“세상에 혼자밖에 없어서 늘 외로웠어요.”
미국까지 입양갔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어머니는 딸의 이 말을 듣고는 소리내어 울었다.
어머니를 대신해 오빠가 실종 당시 상황을 설명해줬다. 버스 정류장 3곳을 가면 고모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 남매는 버스를 타고
고모집을 자주 왕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씨는 내려야할 정류장에서 못내리고 지나가는 바람에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한국에서 같이 살자”, “너를 돌봐줄 가족이 이젠 여기있다”라고 이야기를 하자 딸은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
면서 “한국에 가려면 한국어도 배워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하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가족 곁으로 오고 싶다는 ‘눈빛 교감’을 했다.
그녀의 오빠는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정돼 미국행이 쉬워지면 동생이 사는 미국에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입양인도 아들
(5살)과 딸(3살)을 데리고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상봉장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이야기도 나왔다. 그의 부친은 작년 가을 세상을 떠났다. 입양인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만났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아쉬워했다.
김씨는 "딸을 잃어버리고 나서 힘들게 살아왔다, 이렇게 살아생전에 만나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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