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용재 오닐, 비올라 연주로 세 번째 도전… 클래식 기악 독주상 수상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제63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있다. /레코딩 아카데미 트위터 캡처
한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3)이 LA에서 열린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클래식 기악 독주(Best Classical Instrumental Solo)’ 상을 수상했다. 용재 오닐은 영상 소감에서 “모든 음악인에게 힘든 시기에 가족과 타카치 4중주단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그는 세계 정상급 실내악단인 타카치 4중주단의 멤버다.
현재 미국 콜로라도에 머물고 있는 용재 오닐은 수상 직후 조선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평생 살면서 가장 놀랐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전 세계에서 잡혀 있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실망스러운 일이 거듭되면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데 어두운 터널의 끝에서 한 줄기 햇빛을 본 것 같아서 기쁨과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과 2010년에 이어 세 번째 후보 지명에서 그래미상을 받았다.
용재 오닐은 6·25전쟁 직후 미국에 입양된 전쟁 고아 이복순(68)씨의 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어릴 적 뇌 손상으로 정신 지체 장애를 지닌 미혼모다. 어릴 적에는 워싱턴주 시골 마을에서 TV 수리점을 했던 아일랜드계 미국 조부모가 용재 오닐을 돌보았다. 그는 5세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15세에 비올라로 악기를 바꿨다. 용재 오닐의 양할머니가 10년간 그의 레슨을 위해서 왕복 200㎞를 손수 운전하면서 뒷바라지했다. ‘용재’라는 한국식 이름은 줄리아드 음대 재학 시절 그의 스승인 바이올리니스트 강효 교수가 지어줬다. 용기와 재능이라는 의미다.
용재 오닐은 스승 강효 교수가 창단한 실내악단인 세종솔로이스츠의 단원으로 한국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에는 한국에서 젊은 동료들과 함께 실내악단 ‘디토 앙상블’을 창단해서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는 클래식계의 아이돌 스타로 떠올랐다. 2019년에는 타카치 4중주단의 멤버로 합류하는 등 대중성과 음악성을 겸비한 것도 그의 장점으로 꼽힌다.
그의 그래미상 수상작은 그리스계 미국 작곡가 크리스토퍼 테오파니디스(54)의 비올라 협주곡이다. 2001년 9·11 테러 전후에 작곡해서 슬픔과 위안 등을 담은 4악장 형식 30여 분 길이의 작품이다. 현대 음악이지만 슬픔과 애잔한 정서가 투영되어 있다. 테러의 비극을 표현한 클래식 작품이 코로나 이후 팬데믹 시대의 위로를 담은 곡이 된 셈이다.
그래미상은 매년 팝과 록, 재즈와 클래식 등 80여 개 분야에서 시상한다. 한국에서는 소프라노 조수미(1992년 최고 오페라 음반), 음반 엔지니어 황병준(2012년과 2016년) 등이 클래식 부문에서 그래미상을 받았다. 올해 그래미상에서는 방탄소년단의 수상이 유력시됐지만, 아쉽게도 본상 수상은 하지 못했다. 용재 오닐은 “뉴욕의 택시에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듣고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방탄소년단이 축하 공연을 하는 세상이 됐다”며 “방탄소년단의 그래미상 수상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