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 향상에 앞장섰던 박지혜씨 부모, “딸, 하늘서 기뻐할 것”
25센트 동전 5억개 뒷면에 얼굴 새겨져 발행…사망 1년전 세례받아
미국의 25센트 동전은 주차장·자동판매기·패스트푸드점 등 일상에서 널리 쓰인다. 내년부터 한인 미국인 장애인 인권 운동가 스테이시 박 밀번(1987~2020·한국 이름 박지혜)의 얼굴이 새겨진 25센트 동전을 볼 수 있게 된다.
미 연방 조폐국이 미국 사회에 공헌한 여성 20명을 선정해 2022~2025년 발행되는 25센트 뒷면(앞면은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에 얼굴을 새겨 넣어 기리는 프로그램의 헌정 대상자로 지난해 선정됐기 때문이다. 미국 화폐에 한국계 인물이 등장하는 최초의 사례다. 밀번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은 총 5억개 이상 발행이 예정돼 있다.
밀번은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지체장애를 앓으면서도 장애인 인권 운동에 앞장서다가 2020년 5월 신장 수술 합병증으로 서른셋에 세상을 떴다. ‘
세상을 떠나기 1년전에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사진.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겪은 낙상 사고를 계기로 ‘장애인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의 문제에 눈뜬 밀번은 문제 의식을 담은 블로그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면서 청소년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 지역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부모가 거주하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대학을 마치고 4500㎞ 떨어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장애인 인권 운동가로 활동했다.
밀번은 미국 젊은이인 동시에 한국 젊은이였다. 1990년 걸프전이 발발한 이라크로 아버지가 급파되자 육아를 도우러 한국에서 건너온 외할머니와 가깝게 지냈다. (할머니는 이후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머물렀다.) 덕분에 한국말도 곧잘 하고 호박을 숭숭 썰어 넣어 걸쭉하게 끓인 수제비에 환호하는 ‘된장 입맛’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인권 운동을 할 때는 한인 입양 청년들을 집으로 불러 명절 음식을 먹이며 각별히 돌봤다.
내년에 발행될 예정인 25센트 동전의 시안.
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에 확산하고 미 전역이 봉쇄되자 밀번은 응급 의료에서 소외된 중증 장애인과 저소득층을 돌보기 위한 긴급 대응팀을 꾸려 활동했다. 하지만 지병인 신장 질환 수술 합병증으로 몸 상태가 급속히 나빠지면서 33살 생일이던 그해 5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밀번은 고향 한국을 사랑해 생전에도 여러 차례 다녀갔다. 장애인 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을 늘 안타깝게 여겼다 한다. 지난해 11월 연방 조폐국이 스테이시 얼굴을 새긴 25센트 동전 발행을 공식 발표했을 때 부부는 마침 서울에 있었다.
“예전에 비해 휠체어를 타고 자연스럽게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이 많았고,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여러 시설들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우리 딸이 하늘에서 이걸 보면 참 좋아하겠구나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