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상금 호암상 수상…36세 인공지능 석학 조경현 뉴욕대 컴퓨터과학 교수
2019년 ‘삼성 AI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는 조경현 교수. / 삼성전자
대학 재학 당시 7년째 졸업을 하지 못한 학생이 있었다. 졸업으로 직진하는 대부분의 KAIST 천재와는 달리 그는7년째 학부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전산학과 ’02학번' 학생이었다. 긍듸 유일한 목표는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었고, 학점 따기 쉬운 1학년 교양과목을 집중 공략해 강의실 뒷자리를 지켰다. 하루는 선배가 학과 사무실에서 가져온 팸플릿을 건넸다. 핀란드 알토대 ‘인공 지능(AI)’ 석사과정 프로그램 모집 공지였다. 미래가 희미했던 공학도는 이듬해 무작정 핀란드로 떠났다.
13년 전 졸업을 걱정했던 그 청춘이 지난달 모교 KAIST 전산학과에 1억원을 쾌척했다. 장학금 이름은 ‘임미숙 장학금’, 지원 대상은 여학생이었다. 임미숙은 기부자의 어머니다.
자기 이름 대신 어머니 이름 석 자를 내걸며 “여성 공학도를 지원하겠다”고 한 주인공은 세계적 AI 석학으로 꼽히는 조경현(36)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다. ‘인공 지능 번역’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가 29세였던 2014년,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와 함께 발표한 ‘신경망 기계 번역’ 개념은 기존 기계 번역의 패러다임을 뒤집어 버렸다. 구글 번역기 등 대부분 번역기가 이 개념을 활용한 것이다.
이 천재 공학자에게 쏠린 관심은 뜨겁다. 2015년 뉴욕대 교수로 임용된 지 4년 만에 종신 교수가 됐고, 작년까지 페이스북에서 연구 과학자로도 일했다. 구글, 아마존 등 굴지의 글로벌 IT 기업이 그의 연구를 후원했다. 네이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기업의 자문도 맡고 있다. 얼마 전엔 한국 최고 권위 학술상 ‘삼성호암상’ 공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금은 타는 족족 기부하고, 남성 공학자이지만 여성 공학자 육성을 누구보다 강조한다. 최첨단 AI 전문가인데 정작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분야는 인문학이라고 역설한다.
AI ‘딥 러닝(컴퓨터가 방대한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규칙을 찾아내는 기술)’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차세대 스타’로 뽑히는 사람이 바로 조경현 교수다.
조경현 교수가 고안한 ‘신경망 기계 번역’은 딥 러닝을 적용해 문장의 ‘맥락’을 파악해 번역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과거엔 ‘나 말리지 마’란 문장을 번역기에 돌리면 ‘Don’t dry me’가 나왔지만, 요즘은 ‘Don’t stop me’가 나온다. AI가 접목된 결과인데, 그 핵심 기술이 조 교수가 고안한 개념에서 나왔다.
조 교수는 '번역'에 유독 관심이 많다.
“10년 넘게 헬싱키, 몬트리올, 뉴욕에서 살며 번역의 중요성을 느꼈어요. 그리고 인터넷 세상에선 번역이 더 중요해요. 온라인 콘텐츠의 60%가 영어, 나머지 40%가 중국어·아랍어·불어 등으로 돼 있다고 해요. 영어 편중이 너무 심하죠. 인도네시아는 인구가 3억명 가까운데 인도네시아어로 된 콘텐츠는 거의 없어요. AI 번역이 잘되면 이런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고, 디지털 장벽도 확 낮출 수 있어요.”
그는 번역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외국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는 시대는 한참 걸릴 것이라고 한다.까요? AI는 만능도, 마법도 아니기 때문이란다.
그는 또 젊은 나이인데도 줄기차게 기부를 해왔다. 지난해 11월 ‘삼성 AI 연구자상’을 받고 상금 전액을 몬트리올대에 기부했다. 네이버, SK텔레콤 등 국내 기업체 강의료도 받는 족족 내놓았다.
이번 호암상 상금 3억원도 바로 기부를 했다. 자신은 맨해튼 사니까 자가용 살 필요도 없고, 팬데믹 시대니 고급 휴양지 갈 일도 없다고 했다.
그는 “AI 연구를 하면 할수록 과연 ‘지능이란 무엇인가’ ‘이성이란 무엇인가’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인문학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