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세 박무근씨, 중학교 중퇴 후 자수성가…돈 많이 벌어도 죽을 때 못가져간다
자신의 사무실 앞에 서 있는 박무근(73)씨. 사진:조선일보
10년전부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엔 매년 겨울만 되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성이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모금회 직원들은 밖에서 그를 만났다. 그때마다 이 남성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메모와 1억원이 넘는 수표를 건네고 떠났다. 직원들이 이름과 직업을 물을 때마다 그는 “묻지 말아 달라”고 손사래를 쳤다. ‘대구 키다리아저씨(이름도 모르는 후원자)’라는 별명이 붙은 이 남성은 익명으로 2020년 말까지 총 10억3500만원을 기부했다.
10년 동안 신분을 숨겼던 ‘대구 키다리아저씨’는 조선일보의 취재로 신분이 밝혀졌다. 그는 대구에서 전기 관련 중소기업 대표로 일하는 박무근(73)씨다. 박씨는 “죽으면서 돈 가져가는 거 아니더라”며 “돈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남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 기부가 기부 문화 확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박씨는 2020년 12월 기부 당시 ‘이번으로 익명 기부는 그만두기로 했다’는 메모를 남겼다. ‘10년간 1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이유에서였다. 익명 기부를 끝낸 지 약 1년이 지난 올해 2월 박씨는 아내 김수금(70)씨와 함께 2억222만원을 기부하면서 각각 대구 지역 200호·202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운영하는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이다. 박씨 부부가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은 모두 합쳐 20억원이 넘는다.
2012년 박씨의 첫 기부 당시부터 모금회 측에선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을 권유했지만 박씨는 거절했다. 기부의 의도가 왜곡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회사 이미지를 위해 기부를 한다고 오해할까 걱정됐다”면서 “나보다 더 귀한 나눔을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과시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는 은퇴를 앞두고 기부 문화를 좀 더 확산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자신을 드러내기로 했다. 그는 “나처럼 부족한 사람도 기부를 해왔다는 걸 알게 되면 더 많은 분들이 동참해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1949년 경북 군위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해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중학교를 잠시 다니다 중퇴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박씨는 돈이 없어 학교를 나오지 못하고 굶고 있다는 친구의 소식을 듣자, 급우들과 십시일반으로 쌀을 모아 보냈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보라”는 부친의 가르침 때문이었다고 한다. 박씨는 중학교 중퇴 후 대구에서 전기 기계 회사에 취업했다. 숙식은 회사 사장의 집에서 했다. 얼마되지 않는 월급을 꼬박꼬박 집에 부치고 일부는 모았다.
박씨는 전기 관련 분야에서만 10여 년을 일한 뒤 아내 김씨와 결혼했고, 3평이 되지 않는 단칸방에서 시작해 알뜰살뜰 돈을 모았다. 결혼 후 3년이 지난 뒤 박씨는 비로소 본인 회사를 차렸고, 사업이 안정되자 고향인 군위에서 기부를 시작했다. 그는 2000년부터 올해까지 매달 300만원으로 어려운 어린이들을 후원했다. 도움받은 어린이는 100여명에 달한다.
박씨는 “사업이 번창하면서 고급 승용차를 구매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차를 살 돈으로 남을 도와보자’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다”며 “이것이 10년전 익명 기부를 시작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