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창업·뇌 과학 석학…40대에 이뤄낸 이진형 교수
한인 여성이 최초로 스탠퍼드대 의대·공대 종신 교수로 임명됐다. 그녀는 이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창업자, 뇌 과학 분야 석학으로 유명한 이진형(46) 교수다.
남들은 하나도 하기 어려운 일을 40대 젊은 나이에 이뤄냈다.
이 교수는 중학교 졸업 후 과학을 공부하겠단 마음으로 서울과학고에 진학했다. 서울대 전기공학부 입학 면접에서는 교수가 “전기과에 여학생이 뭐 하러 오느냐”라고 물었다. 그럼에도 매력을 느꼈던 전기과에 입학했고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까지 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를 졸업할 때쯤 외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는 “뇌 질환 치료를 왜 저렇게밖에 못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며 “풀고 싶은 문제가 생기니 목표가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그렇게 뇌과학 연구에 뛰어들게 됐다.
전기공학을 공부하다 갑자기 진로를 바꾸겠다고 하니 또다시 반대에 부딪혔다. 지도교수와 주변 지인들 모두 “커리어가 망가진다” “전기공학자인데 어떻게 뇌 연구를 하겠느냐”라고 했다. 심지어 당시 미국 명문대 UCLA 교수로 임용된 상황이었다.
고군분투 끝에 신경세포가 망처럼 연결된 뇌를 전기 회로도처럼 분석하는 연구로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 과제 지원을 받게 됐고,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스탠퍼드대 종신교수로 임용됐다. 2019년에는 NIH가 주는 최고 권위상인 ‘파이어니어상’도 받았다. 이 교수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연구를 하다 보니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몇 배의 노력을 더 들여야 했다”며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으로 버텨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뇌 질환 극복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2013년에는 뇌 질환 진단·치료 스타트업 ‘엘비스’를 창업했다. 이때도 주변에서 “교수가 무슨 사업을 하느냐”고 만류했다. 그녀는 “전공을 바꿨을 때보다 사업을 새로 시작할 때 더 큰 저항과 벽을 느꼈다”고 했다.
엘비스는 사람의 실제 뇌를 디지털 공간에 똑같이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이용해 뇌의 기능과 상태를 정밀하게 측정해 뇌 질환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가능한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이 교수는 “뇌전증(간질)을 진단할 수 있는 플랫폼을 올해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 여성으로 미국 사회에서 유리천장을 하나씩 깨며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과학자, 창업가, 교수로 불리지만 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즐겁고 해결했을 때의 그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문제를 계속해서 풀어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