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슨 미국무부 극동담당차관보와 이승만대통령 /버지니아 역사문화박물관
신용석 전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잊힌 미 외교관> 월터 로버트슨 평전 펴내
미국의 이승만 제거 검토에 강력 반대…이승만과 12차례 회담, 방위조약 체결
“영국에 처칠 있다면 한국엔 이승만이 있었다 “
“1953년 6·25전쟁 당시 월터 로버트슨 미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는 미국이 검토하던 이승만 대통령 제거 작전(에버레디을 저지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통해 대한민국을 두 번 구했습니
다. 그런데 저는 이런 인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자책감을 느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신용석(85) 월터 로버트슨 기념사업회장이 최근 ‘자유세계의 위대한 시민-월터 S. 로버트슨’을 출간했다.
그는 뜻있는 이들과 2023년 ‘월터 로버트슨 기념사업회’를 만들었다.
로버트슨의 후손을 찾아 연락하고 미국에 남아 있는 자료를 추적했다.
기념사업회가 약 4만 점의 로버트슨 개인 문서가 보관된 버지니아 역사문화 박물관을 찾아 조사했다.
신 회장이 로버트슨 연구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1953년 5월 29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 국무부·국방부 연석회의다. 여기서 휴전 협상에 강력히 반대하는 이승만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논의됐다.
미국은 1952년부터 유사시 이승만을 제거하는 것을 골자로 한 ‘에버레디 작전’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이때 금융인으로 활동하다가 차관보에 취임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로버트슨이 제동을 걸었다.
그는 “한국을 지키기 위해 싸워 놓고 이제 와서 한국의 주권을 침해한다면 우리가 침략자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는 취지로 강하게 반대했다. 결국 이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다.
로버트슨은 이어 6·25전쟁 발발 3년이 된 1953년 6월 25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특사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때까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던 이승만과 12차례 회담했다.
휴전에 반대하며 전격적으로 반공 포로를 석방한 이승만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미국 일각에서는 그를 폄하하며 협상 파기를 종용했다.
하지만 로버트슨은 미 국무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이승만은 그의 나라를 미국을 포함한 여타 국가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공산주의와 싸울 결의와 의지를 지니도록 각성시켜 놓았다. 이 같은 정신과 용기는 보존되어야지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
두 사람은 7월 11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합의, 다음 날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로버트슨은 이후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이끈 윈스턴 처칠과 1950년대 이승만을 비교하는 기록도 남겼다.
신 회장은 로버트슨 연구를 통해 그가 이승만 제거 작전에 반대하고, 한미동맹 체결에 적극적이었던 배경에 그의 주중 공사시절 경력이 있었다고 했다.
그가 1945년 중국의 혼란기에 경제공사와 대사대리로 근무하면서 중국의 공산화 과정을 지켜본 것이 대한민국의 공산화는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