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내려갈 때만 열리는 하수구캡 개발해 히트한 생활용품업체의 창업 스토리
날이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화장실이나 싱크대에서 올라오는 하수구 냄새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고준성 ‘고준성생활환경연구소’ 대표(사진)는 이 고민을 하던 아내의 얘기를 듣고 시험삼아 제품을 제작했다가 창업까지 했다.
◇물 내려갈 때만 열리는 하수구 캡
고준성생활환경연구소의 ‘냄새차단 제로트랩’은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악취, 세균, 벌레, 유해가스를 막아준다. 플라스틱(ABS) 재질의 몸체에 주머니 모양의 개폐구가 달린 형태로, 배수 시 물 자체의 무게로 개폐구가 열려 물이 빠져나가고, 이후 중량핀과 물의 표면 장력에 의해 개폐구가 자동으로 차단되는 원리를 이용했다. 그래서 물 내려갈 때만 열리고, 평소에는 닫혀 있다.
번거로운 배관공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하수구캡에 끼우기만 하면 악취와 벌레를 막을 수 있다. 개폐구에는 방탄 소재로 활용되는 TPU가 적용됐다. 덕분에 개폐구는 성인 남성의 힘으로도 찢어지지 않고 락스 등에도 손상되지 않아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소비자가 스스로 시공하는 경우가 60%, 대리점을 통해 시공하는 경우가 40% 정도 된다.
2006년 첫 출시돼 온라인몰 등에서 150만개 판매를 돌파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판매가 더욱 늘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집안 곳곳을 손보게 된 사람들 덕이다. 미뤄뒀던 악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로트랩을 찾는 것이다. 특히 오래된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많이 팔린다고 한다. 요즘 판매 추세는 월 1만개가 넘는다. 현재 온라인몰(https://bit.ly/3OuVSp5)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18년 다닌 회사 관두고 2~3년 개발에 몰두
하수구와 거리가 먼 화이트 칼라 출신이다. 18년 동안 부산의 한 회사에서 회계, 총무파트에서 근무했고 해당 부서의 책임자 자리까지 올랐다. 사업 생각은 딱히 없었다. 하수구에서 고약한 냄새가 올라온다는 아내의 불만이 시작이었다.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상품화하면 대박이 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회사를 관두고 2~3년 정도 제품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심지어 콘돔으로도 실험했습니다. 첫 2~3번은 실패했고 한 4번째 시도 만에 초기 형태의 제로트랩을 만들었습니다.”
상품화에 성공하자 특허를 출원하고 2006년 부산에서 회사를 차렸다. 출시 5년 만에 대대적인 상품 개선을 해서 지금과 비슷한 제품이 나왔다.
TPU 재질은 고온, 저온뿐만 아니라 락스 같은 독한 성분에도 강해 반영구적이다. TPU 주머니에 부착된 핀은 국가공인인증기관에서 사용횟수 10만회 이상을 검증받았다. 하루 30번씩 물이 빠져나간다고 가정하면 10년은 쓸 수 있다.
◇찜질방에서 쪽잠자며 홀로 시작한 사업
사업 초반 불도저처럼 마케팅을 했다.
“불법 현수막을 점검하는 공무원들이 퇴근하는 금요일 저녁에 현수막을 붙여 일요일에 떼는 식으로 홍보했습니다. 3일 현수막을 붙이면 5일치 일감이 들어왔어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사업 확장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수도권에 진출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족이 문제였다.
“부산 밖에 모르는 식구들에게 부산을 뜬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갈까 말까 1년 이상을 고민했습니다.
이왕 빼든 칼, 무라도 썰어야 직성에 풀릴 것 같았다. 거처도 없이 나홀로 서울행을 택했다.
“제품을 잔뜩 실은 트럭 바깥에 광고판을 붙인 채 혼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잘 곳이 없어 찜질방을 전전했죠. 그러다 한 달 만에 사무실 겸 원룸을 얻어 본격적인 서울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팔면 대박이 날 것 같다는 예감은 적중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키워드 광고를 시작하자 마자 시공의뢰가 들어왔다.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지만 신났다.
3년 동안 일당백 생활을 하다 보니 제품이 소비자와 시공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판매 및 시공을 담당하는 대리점을 열고 싶다는 문의가 줄을 이었다.
“대대적인 공사없이 1~5분 시공만으로 작업이 끝나니 사업자 입장에서도 매력적입니다. 30평 아파트 배수구가 평균 7개인데, 전체 시공 시간이 30~50분에 불과합니다.”
◇지자체 등 대량공급, 해외 수출도
지자체, 대기업, 병원 등에서 시공 문의도 많이 온다. 대량 공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 수출도 한다.
“한국에 자주 오는 한 인도네시아 교민이 제로트랩을 써보고 반해서, 인도네시아에서 판매 대행을 하고 계세요. 고객이 나서서 해외진출을 시켜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직접 만든 제품을 쓴 고객이 기뻐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개발자로서 가장 큰 행복이다. “단독주택의 경우 배관공사로 악취를 막을 수 있지만 아파트는 그럴 수 없죠. 아파트 사시는 고객분들이 제로트랩 설치 후에 냄새 안 난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자부심을 느낍니다.”
회사명 ‘고준성 생활환경연구소’에 들어간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회사를 운영하는 게 목표다.